'빈곤은 사회구조에 기인한다’
◆ 경제학자의 고뇌, 빈곤퇴치운동으로 노벨평화상 수상
유누스는 방글라데시의 은행가·경제학자·사회운동가이다. 빈민들에게 무담보 소액대출 운동을 하며 그라민은행을 설립하여 빈곤퇴치에 앞장선 공로로 자신이 설립한 그라민은행과 함께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유누스는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40년 당시 영국령 인도 벵갈지방(현재는 방글라데시)의 치타공의 바투아(Bathua)라는 마을에서 보석 세공업에 종사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아홉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1960년 방글라데시의 다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유학하여 1969년 밴더빌트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72년까지 미들테네시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72년 방글라데시로 돌아간 후 치타공대학의 경제학과 교수가 되었으나, 국민 대부분이 빈곤에 시달리는 현실을 개탄하며 이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빈곤한 삶에 내몰리는 현실 속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일에 고뇌하였다. 1973년 20여 달러가 없어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에 시달리는 인근 주민들에게 자신의 돈을 빌려준 것을 계기로 이것이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인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의 시발점이 되었다.
◆ 하위 25%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대출해 드립니다
방글라데시의 시민들은 하루종일 일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고리대금업자에게 빌린 돈의 이자로 갚아야 했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시민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를 지켜본 경제학자인 유누스는 방글라데시의 은행에 찾아가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가?”라고 묻자 은행 관계자는 담보가 없기 때문에 빌려줄 수 없다고 답하였다. 이를 들은 유누스는 1976년 직접 은행을 설립한다. 150달러 미만의 돈을 담보와 신원보증 없이, 하위 25%의 사람에게만 대출 가능하도록 조건을 걸었다.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준 뒤 조금씩 오랜 기간에 걸쳐 갚아나가도록 하는 소액 장기저리 신용대출 은행이었다.
고리대금업자들이 고이율을 부과하여 주민들이 이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을 보고 이들이 작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돈을 쉽게 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처음에는 자신의 돈을 사비로 빈민들에게 담보 없이 무이자로 빌려주다가 1976년 은행에서 자신이 대출을 받아 빈민들에게 소액대출을 하는 무담보 소액대출(마이크로크레딧)이라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를 위해 그라민은행을 설립하였고, '그라민은행 프로젝트(Grameen Bank Project)'를 운영하였다. 그 결과 1979년까지 500여 가구를 절대빈곤에서 구제하였고, 이 프로젝트로 인해 많은 빈곤가구가 혜택을 보자, 유누스는 이 성공에 고무되어 1983년 그라민은행을 법인으로 설립하였다.
◆ 재봉틀과 수레, 송아지로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다
그라민 프로젝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액대출을 해줘도 일자리가 없어 이자와 원금을 갚고 싶어도 갚을 수 없는 열악한 경제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주었다. 가난한 서민은 대출한 돈으로 수레와 재봉틀, 송아지 등 경제활동에 필요한 곳에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소액대출금으로 수레에 투자하여 물건을 파는 이동식 상점을 알선해주기도 하고, 재봉틀을 사게 해서 의류회사와 연결하고 안정적인 일감도 알선해주고, 축산업자와 연결하여 송아지를 사서 소득의 길을 열어 자립을 통해 이자와 원금을 갚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그 결과 예상외로 원금 회수율은 98%에 달했으며, 시민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극빈자에 대한 무담보 대출이었으나 회수율이 99%에 육박하여 그라민은행은 1993년 이후 흑자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놀랍게도 대출받은 극빈자 600만 명의 58%가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것으로 집계되는 기적을 낳았다.
여러 가구가 이의 혜택을 보면서 사업이 차츰 확장되어 1982년 28,000명의 회원이 있었고, 1983년 은행은 정식으로 법인으로 설립되었다. 극빈자에 대한 무담보 대출이었으나, 회수율이 매우 높았고, 많은 가구가 극빈 상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2007년까지 그라민은행에서 700만 명 이상이 대출해 간 것으로 집계되었다.
◆ 빈곤은 사회구조에 기인한다 - 마이크로크레디트 빈곤퇴치의 모범이 되다
'빈곤은 사회구조에 기인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유누스의 이 같은 마이크로크레디트 운동은 빈곤퇴치 운동의 모범이 되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유누스는 빈곤퇴치의 공로를 인정받아 자신이 총재로 있는 그라민은행과 함께 2006년도 노벨평화상의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 외에도 1984년 막사이사이상, 1994년 세계식량상, 1998년 시드니평화상, 2006년 서울평화상과 마더테레사상 등을 받았다. 2006년 10월 서울평화상 수상차 대한민국을 방한하기도 하였다.
그라민은행(Grameen Bank)은 1983년에 빈곤퇴치의 일환으로 방글라데시 치타공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무함마드 유누스에 의해 설립되어 빈민들에게 담보 없이 소액대출을 제공하여 빈곤퇴치에 이바지해온, 가난한 이들을 위한 소액 대출 은행이자 사회적 기업이다.
무하마드 유누스가 1973년 20여 달러 때문에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에 시달리던 빈민들에게 자신의 돈을 빌려준 것이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credit:무담보 소액대출)의 시발점이다. 27달러로 시작하여, 2007년 기준으로 직원 약 1만 8,000명, 지점 2,185개의 큰 은행으로 발전했다. 2006년, 설립자인 무함마드 유누스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이 은행은 방글라데시 전국에 1,175개의 지점을 두고 1,600억 다카(약 3조 3,600억 원)를 대출하는 대형은행이 됐다. 미국·영국 등 여러 선진국에서도 이 은행의 성공 사례가 빈곤 퇴치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라민 은행은 돈을 갚지 않는다고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상환율은 설립 이후 연평균 90% 이상이다. 한 지점 안에서 한 사람이라도 신용이 나쁘면 다른 대출자 역시 대출 한도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시스템으로 서로가 서로의 신용을 담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라민은행의 한국 지부로 “신나는 조합”(www.joyfulunion.or.kr)이 있다. 대출과 운영 방식은 방글라데시 본부와 같은데, 보증인이나 담보물도 필요 없으며 다만 가난한 사람으로 확인되면 그만이다. 그라민은행 홈페이지(www.grameenbank.com)에서 좀 더 자세한 관련 정보와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소액 신용대출에 관한 정보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버추얼 라이브러리’(www.gdrc.org/icm)에서 안내받을 수 있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2006년 그라민 은행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다.